백범(白凡)은 1893년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어 이듬해 동학혁명을 지휘하다 일본군에 쫓겨 만주로 피신,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단(義兵斷8에 입단했다.
1896년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를 살해하여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었다. 1896년 탈옥하여 마곡사(麻谷寺)의 중이 되었다가 다시 속세로 나와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종신형을 언도받아 복역 중 감형으로 출옥, 농촌계몽운동을 하였다.
상해로 망명한 후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국무령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다. 1944년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선임되고 1945년 광복으로 귀국하였다.
1948년에는 남북협상회담을 벌였으나 실패하고 온건주의로 정국 진행을 살펴보던 중 암살당했다. 국민장으로 치루어졌으며 생전에 그가 자리를 잡아 두었던 효창공원내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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