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판매원 고용해 ‘50대 여성’ 집중 겨냥…전국 5천여 곳 활개, ‘홍보관 중독자’만 50만명 추정
▲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한 홍보관에서 직원이 상품을 들고 나오자 중년 여성들이 열광하고 있다.
자료 :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
노인들을 울리는 ‘떴다방 사기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1인당 피해 금액도 수십 만원대에서 1천만원대로 불어났다. 심지어 1억원 이상을 사기당한 노인들도 있다. 피해 연령대도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떴다방 홍보관’의 주요 타깃이었으나, 최근에는 50대 중년으로 연령 하향세가 뚜렷하다. 홍보관을 찾는 50대 중년 여성들이 늘어나자 홍보관 업체의 직원들 사이에서는 ‘홍중녀(홍보관에 중독된 여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사기 수법이 진화하고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충남 대전시 태평동에 사는 김성연씨(가명·65)의 집에는 천삼, 달마도, 원액기 등이 잔뜩 쌓여 있다. 이 중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물건도 수두룩하다. 김씨가 이 물건들을 사기 위해 들인 돈은 2천5백만원이다. 평생 안 쓰고, 안 먹으면서 모은 돈 전부였다. 여기에다 대출까지 받았다.
“혼을 빼놓게 만들어 놓고 물건 판다”
▲ 떳다방 홍보관 피해자인 하미순씨가 고액을 주고 구매한 제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
김씨는 왜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물건을 산 것일까. 김씨는 슬하에 딸이 한 명 있는데 출가해서 따로 살고 있다. 남편은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요양 중이다. 홀로 사는 김씨에게 어느 날 이웃이 찾아와 “홍보관이 있는데 함께 가자”라고 해 따라나섰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홍보관의 젊은 직원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김씨에게는 점장이라는 사람이 접근했다. 처음 보는데도 “어머니, 힘드시죠”라며 어깨도 주물러주는 등 살갑게 다가왔다. 그는 매일 전화를 걸어와 안부도 물었다. 혼자 외롭게 지내던 김씨는 어느새 점장이 자식처럼 느껴졌고, 정도 깊이 들었다.
김씨의 마음이 넘어왔다고 생각한 점장은 서서히 숨겨놓은 발톱을 드러냈다. 김씨에게 온갖 물건을 권유하며 구매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몸에 좋은 만병통치약이다. 산삼보다도 더 귀하고 효험도 좋다”라며 ‘천삼’ 한 뿌리를 권유했다. 그러면서 “물건을 팔지 못하면 진급도 못 한다”라며 김씨의 감정에도 호소했다. 결국 김씨는 1백78만원을 주고 천삼 한 뿌리를 샀다.
점장의 물건 강매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달마도’를 내밀었다. 그는 “이 그림 한 장만 가지고 있으면 집안의 액운도 없애주고, 모든 일이 잘된다. 자식들의 건강도 지켜준다”라고 했고, 김씨는 3백만원을 주고 달마도 한 장을 샀다. 실제 원가가 10만원도 안 되는 그림이었다.
그 후에도 원액기(50만원), 하이라이트(2백40만원) 등의 물건을 계속해서 샀다. 김씨보다 형편이 안 좋아 보이는 사람이 물건을 사면 경쟁심이 일어 더욱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김씨는 물건을 사기 위해 보험금을 담보로 보험사에서 대출도 받았다. 또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1천만원의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그런데 어느 날 홍보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아무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한숨만 쉬고 있다.
김씨는 “홍보관에 가면 누구든지 물건을 사게 만든다. 그 사람들이 혼을 완전히 빼놓고 물건을 판다. 간·쓸개 다 빼줄 수밖에 없다. (점장이) 아들 같다는 생각에 출세한다면 도와주고 싶었는데, 결국 사기를 당했다. 딸이 알면 큰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라며 울먹였다.
김씨는 요즘 버스 탈 돈이 없어 외출할 때면 10~20리 길을 걸어다닌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억울해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내가 미쳤지, 미쳤지” 하면서 가슴을 치다가도 돈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치민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점장이 영업한다는 청주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던 사람이 안면을 싹 바꾸는 것이 아닌가.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피해 사례를 널리 알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떴다방 홍보관의 대표 상품은 ‘건강 보조 식품’이었다. 효능을 속인 채 10배 이상을 받고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단속이 심해지고, 건강 보조 식품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다른 상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황금 거북이(일명 CMC), 수맥 차단기, 달마도, 황금 독수리, 동해비 등이다. 이 중 ‘동해비’는 일종의 항아리이다. 이 항아리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재액을 물리치고 소원을 성취한다며 팔고 있다.
‘상조 서비스’와 관련한 상품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보통 노인들은 자기 손으로 죽음을 준비하려고 한다. 홍보관들은 노인들의 이런 심리도 이용하고 있다. 시중에서 10만~20만원 정도 하는 수의를 1백80만원에 팔고 있다. 업체들은 이 돈만 내면 “모든 상조 서비스를 받는다”라고 홍보하지만, 나중에 3백만원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는 노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판매 상품 대다수가 가짜로 밝혀져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에 사는 전순자씨(가명·60)도 홍보관을 찾아다니다가 낭패를 보았다. 전씨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자 ‘액운을 막아준다’ ‘수맥을 차단해 준다’라는 말을 믿고, 황금 거북이를 1백50만원에 샀다. 홍보관 점장은 금 거북이가 유명 대학 교수에게 과학적 검증을 받은 것처럼 말하고, 홍보 책자까지 돌렸다. 전씨는 “집안에 두면 자식들 하는 일이 잘 풀린다”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전씨는 금 거북이 외에도 한 개에 58만원 하는 ‘프로폴리스(벌집 추출액) 15세트’를 8백70만원에 구매했다. 몸에 좋다는 천삼도 샀다. 하지만 전씨가 산 물건은 대부분 가짜였다. 금 거북이는 원가가 1만5천원이었고, 아연 재질의 금속 제품에 불과했다. 업자가 무려 100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한 것이다. 천삼 역시 국산이라고 했으나 중국산으로 의심되었다. 프로폴리스도 시중가보다 턱없이 비쌌고, 효과도 없었다. 전씨는 현재 남편과 자식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사는 하미순씨(가명·62)는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할 수만 있다면 홍보관에 찾아가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하지만 허망한 꿈일 뿐이다. 하씨는 동네에 들어선 홍보관에 3개월 동안 다니면서 약 5백만원어치의 물건을 샀다. 하씨가 산 물건의 목록을 보면 프라이팬(개당 9만9천원) 네 개, 찜기(개당 12만원) 두 개, 진주 목걸이(13만원) 한 개, 원액기(개당 50만원) 두 개 등이다. 하씨도 홍보관이 사라진 뒤에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물건도 대부분 가짜였다. 진주 목걸이의 경우 시중에서 약 1만원이면 살 수 있는 가짜였다. 다른 제품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씨는 “‘홍보관 직원들이 금은방에 가면 잘 알려주지 않으니까 절대 물어보면 안 된다’라고 교육시켰다. 우울증이 치료된다고 해서 숯 매트도 샀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내 주위에도 피해를 본 사람이 10명 정도 되는데, 금 거북이와 금 독수리 등을 몇천만 원어치씩 샀다. 자식들은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든지 반품하고 돈을 되돌려받고 싶다”라고 하소연했다.
얼마 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는 2백여 명이 한꺼번에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원가 3만원짜리 건강 보조 식품을 한 박스당 68만원에 구매했다. 전체 피해 금액만 4억~5억원에 달한다. 다행히 (사)한국노년소비자연합(이하 한노연)이 구제에 나서면서 박스당 28만원씩을 업체로부터 돌려받았다.
박옥선씨(가명·63)는 “피해자 중에는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아놓은 것을 가져다주고, 반지나 목걸이까지 팔아서 물건을 산 사람도 있다. 지금도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송정역 부근에 있는 홍보관에는 사람들이 엄청 몰려간다. 피해자가 쏟아질 것이다”라며 우려했다.
노정호 한노연 사무총장은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홍보관 주의령을 내릴 때 전국에 약 3천여 곳의 홍보관이 있다고 했다. 공정위가 파악한 업체는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방문 판매 허가를 받은 곳이다. 여기에 무허가 업체 등까지 포함하면 최소 5천여 곳의 홍보관이 운영되고 있다. 보통 한 개 홍보관에 3백~4백명의 사람들이 몰리고, 한 사람이 물건을 사기 위해 하루에 약 30만원을 지출한다. 이를 토대로 보면 홍보관에 중독된 중년과 노년 소비자가 50만명 정도 된다. 전체 시장 규모로 따지면 연간 6조~7조원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짜 상품’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예방책
떴다방 홍보관 피해를 막을 수는 없을까. 우선 이들의 홍보와 ‘공짜 상품’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공짜 상품’은 더 큰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홍보관의 미끼이기 때문이다. 홍보관의 홍보를 과신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한 번 현혹되어 홍보관을 찾으면 두 번, 세 번 찾게 되고 결국 물건을 살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도 공통적으로 “그곳에 가면 물건을 안 살 수가 없다. 남이 사면 따라 사게 되고, 또 무료 상품을 받으면 미안해서라도 사게 된다”라고 말한다.
홍보관이나 체험방은 보통 3개월 동안 한 곳에 머무르며 물건을 팔고 있다. 여기서 기한을 ‘3개월’로 정한 것에는 홍보관의 교묘한 꼼수가 숨어 있다. 건물 임대차 기간이 3개월 미만일 경우 방문판매법에 따라 제품 구매일로부터 14일 이내에 별도 위약금 없이 반품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홍보관들은 3개월을 넘겨 법망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홍보관이 차려지면 그때부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총력전을 펼친다. 중년층과 노인층 여성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물 공세와 위문 잔치를 벌인다. 각종 생필품을 무료로 나눠주고 연예인이나 무명 가수들을 불러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다. 푸짐한 경품을 준비해놓고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노래 자랑도 개최한다. 건강 관리법 등에 대한 강연도 연다. 이렇게 선심을 써서 사람들을 끌어모은 후에는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접근해서 친해진 후 물건을 강매한다. 물건 값은 최소 10배 이상 높여 폭리를 취한다.
최근에는 중년 여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꽃미남계’도 등장했다. 20대 전·후반의 잘생긴 꽃미남을 판매 사원으로 고용해 중년 여성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여성은 “여성들이 홀딱 빠지게 만든다. 물건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 하루 매출이 2억~3억원은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떴다방 홍보관의 피해는 잘 드러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노인들의 경우 피해를 당해도 가족들이 알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숨기기 때문이다. 이런 노인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빚을 지게 되어 자식들과 불화를 빚는 일도 허다하다. 현행 소비자보호법에는 물건을 구매한 지 14일 이내에 환불을 요구할 수 있지만 때를 놓쳐 환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업체들도 환불 기간이 지난 것을 이유로 “고발할 테면 하라”라며 배짱을 부리기 일쑤이다. 만약 악덕 판매방의 최면 상술에 속아 피해를 당한 경우에는 한노연 피해 신고 센터(1544-1551)에 신고하면 구제를 받을 수도 있다. 한노연은 거래 업체와 소비자의 화해 등을 주선하고 있다. 화해가 성립되지 않으면 사법기관에 고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편, 국회보건복지회 소속 이낙연 의원(민주당)은 지난 5월 ‘노인소비자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고, 이번 10월 정기국회에서 상정할 예정이다. 이낙연 의원은 “노인들은 판단 능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되어 불법 또는 부당한 판매 행위로 인한 피해를 입기가 쉽다. 때문에 상거래에서 일반 소비자보다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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