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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수맥감정연구회 풍수정보-양택론(陽宅論)|

by 宣人 2011. 11. 10.

양택론(陽宅論)

                 耳山 張泰相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고정관념과 자만심 그리고 나태성일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학자들이 좌우명으로 즐겨 쓰던 문장이 있었으니


學海無涯勤是岸(학문의 바다는 나루터가 없으나 부지런함이 바로 나루터요)

靑雲有路志爲梯(성공의 길이 있기는 있으나 뜻이 바로 청운(성공)에 오르는 사다리다)


라는 문구는 왕궁(王宮)의 벽에까지 대련으로 걸려 있을 정도다.


그런데 필자는 이상의 경계해야 할 단점을 다 갖추고 있다고 본다. 학교 다닐 때 부처 숙제를 제때에 해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지금 이순(耳順)이 다 되가는 나이인데도 한유한 때가 오면 그 때가서 모든 책을 모두 다 관찰 연구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으니 그야말로 가을꽃을 봄꽃인줄 알고 찾아드는 나비 꼴이다.


蝴蝶不知歲月晩 滿山紅葉訪春花(벌, 나비가 세월 늦은 줄 모르고 만산이 가을 단풍 들었는데 봄꽃을 찾아 헤메는구나)


또 평생 풍수를 연구했다는 자만심으로 풍수학에서는 보조(補助)에 불과한 양택론은 우습게 생각했었다.

물론 양택서를 전해 읽지 않은 것은 아니고

 

황제택경(黃帝宅經)이나 양택삼요(陽宅三要) 양택대전(陽宅大全) 양택십서(陽宅十書) 팔택명경(八宅明鏡) 금강두림경(金剛斗臨經) 등은 30여년 전부터 좀 읽었고 이중에서 황제택경과 금강두림경은 간헐적으로 일부 몇몇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 본적도 있었으므로 그만하면 양택에 대해서 더 이상 연구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자만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독서의 삼악(三惡)이라 일컫는 고정관념, 자만 , 나태(게으름)를 다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가 쓴 풍수총론(風水總論)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필자는 게으른 탓으로 현공학(玄空學)에 대해 심득한지는 불과 10여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나중에 연구하면 되지 하는 나태함 때문이었다. 현공학을 좀 깨닫게 된 것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八字에 43세부터 건곤지액(蹇困之厄)을 만나 즉 20년 간 패운을 만나 반생사업을 진부동류(盡付東流)했다는 적천수천미(適天髓闡微)에 나오는 말대로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어 5, 6년을 유랑하다가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48세 되던 辛未年에 진천에 토굴(土窟)을 하나 장만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배운 것은 도둑질 밖에 없다는 식으로 청주에서 5년 간 주역강의를 하게 되어 겨우 조반석죽(朝飯夕粥)은 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아주 한유한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방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서책들을 벽장에 정리하다보니 내 자신도 모르게 많은 양의 책을 모집해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현공풍수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현공풍수에 대한 원리를 세상에 대백(大白-크게 밝힘)시킨 장본인은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의 저자 심소훈(沈紹勳)선생이란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심소훈 선생의 저서라면 무조건 다 찾아 읽어보았다.

 

그때 주로 읽은 책이 심소훈선생의 주역시아록(周易示兒錄) 심씨지리변정쾌요(沈氏地理辨正抉要) 현공고의사종통석(玄空古義四種通釋) 등이었는데 그런 대로 막연하나마 이해를 할 수가 있었는데 막상 현공학의 대본(大本)이 되는 심씨현공학을 읽는 순간 마치 곤륜(崑崙)이나 백두(白頭)같은 장산(壯山)이 크게 가로막은 듯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자탄하기를 반생을 공부했다는 학문의 잣대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괴감(自愧感)에 사로 잡혀 침수불안(寢睡不安)했고 식불감미(食不甘味)했다.

 

그 때가 壬申年(1992년) 늦은 봄이라고 생각되는데 바로 학선(鶴仙)과 K. B. S. 김성율(金成律)기자가 필자의 누옥(陋屋)을 방문한 때이다. 두 양반 덕으로 잡념을 기둥에 걸어매두고 하루종일 소주 독에 빠졌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상쾌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난해한 문제에 부딛쳤을 때 황소나 불도저같이 밀고 나가는 형이 있는가 하면 필자같이 근기(根氣)가 약한 사람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을 쓰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필자의 공부하는 스타일은 후자에 속해 공부하다 막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잊어버리거나 그에 유사한 다른 책을 읽으므로 서 우회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므로 심소훈선생의 후학들이 쓴 택운신안(宅運新案) 이택실험(二宅實驗) 공씨현공보감(孔氏玄空寶鑑)등을 읽어보았으나 원리를 대각(大覺)하지 못 한 채 다시 방치 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마음속에 해결할 것을 해결하지 못한 찝찝한 마음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대만 학자 종의명(種義明)이란 자는 현공 책을 서너 권이면 충분할 것을 20여권이나 써서 늘어놓았고 홍콩의 백학명(白鶴明)은 70여권을 썼으며 대만의 상대(翔大)출판사에서 출판한 장대홍삼원오비수초본(藏大鴻三元奧秘手抄本) 현공진해(玄空眞解) 김씨지학수편(金氏地學粹編) 지리청랑옥척도금침집(地理靑囊玉尺度金鍼集)등은 대만 돈으로 각 권당 만오천원을 하므로 한국 돈으로는 각 권에 백만 원에 가까웠다. 그러나 현공을 통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값의 고하를 불고하고 무조건 모두 사서 읽어보았으나 어느 책이나 막상 학리의 핵심 처에 가서는 다같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꼬리를 감추고 마는 그야말로 책도둑놈들 이었다.

 

그러나 홍콩의 백학명선생은 책속에 진체(眞諦)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선생을 만나 현공의 묘리를 깨닫고 있는 이라고 보고 대만의 왕씨풍수학(王氏風水學)의 저자 왕송령(王松齡)선생도 현공학은 물론 청나라 말기 풍수의 대가 장구의(張九儀)선생도 현공학은 물론 청나라 말기 풍수 대사(大師) 장구의 선생의 학설을 그대로 전수 받은 분이라고 본다.

 

※ 張九儀선생의 저서로는 탁옥부(琢玉賦) 지리연탄자(地理鉛彈子) 천산투지진전(穿山透地眞傳)등이 있는데 풍수지리 학계의 숫 한 조사(祖師)나 대사(大師)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상승의 경지에 이른 분은 장구의 선생이 유일한 분이라고 본다.


그 후 丁丑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뉴욕에 갈 일이 있어 몇 달 머문 적이 있었는데 나의 취미란 30년 이상을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책방을 순방하는 것이 취미인데 뉴욕에는 중국책방이 일곱 군데나 있으므로 심심 파적으로 일주일에 하루정도 돌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러싱 메인 스트맅에 있는 문화서점(文化書店)이란 중국 책방을 들렀다가 현공신탐(玄空新探)이란 책이 있기에 현공에 관한 책이면 무조건 사고 보는 습관이 있어 무심코 사 가지고 와서 책장에 꽂아 놓았다가 저녁나절 자세히 살펴보니 나의 안전(眼前)에 무현(霧弦) 일어났다.

 

그제서야 저자의 약력을 찾아보고 출판사를 알아보니 중국 심천(深川) 대학 교수로 있는 호경국(胡京國)이란 사람이었다.

 

필자는 옛글에 돈을 쫓는 사회나 돈을 탐닉하는 자 밑에서 진리가 나오지 못 한다는 구절이 새삼 생각나서 혼자 찬탄을 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홍콩이나 대만의 부자 풍수사들은 하나같이 감추던 진리를 가난한 심천의 대학교수가 진솔하게 모두 다 밝혀 놓은 것이다.

 

밤을 새워 읽는 동안 그 답답하고 안타깝던 현공의 비밀의 안개가 햇빛아래 흩어지듯 걷히고 얽히고 설켰던 실타래가 한올 한올 풀려 나가듯 했다.

 

옛날 선승들의 대오각성(大悟覺性)에 비유해도 될 만큼 희열이 온 몸을 감돌았다. 그 후 심씨현공학(沈氏玄空學)을 읽어보니 그 책속에 다 밝혀 놓은 것인데 내 머리가 아둔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 후로 현공의 오묘한 이치를 조금은 감지했으므로 현대 풍수사들의 양택서를 모두 구해 보니 다같이 현공론에 입각한 논리인데 생활풍수 즉 양택에 대한 논리로는 백학명선생이 발명한 것이 자못 많았다.

그제서야 필자는 느끼기를 풍수를 조금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과거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앞섰고 양택의 논리가 비록 깊은 이치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깊은 이치에 바탕을 두고 발명된 것이고 또 대경대법(大經大法)의 이치를 벗어 난 것은 한 구절도 없는 이론인 만큼 옛날부터 깊게 연구하지 못 한 점을 크게 후회했다.

 

이는 모두 작은 것을 무시하는 자만심에서 발로 된 것이므로 혹 후학자가 나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이 글을 쓰는 바이다.

 

그리고 매달 많은 경비를 들여 이득이 남지도 않는 월간지를 계속해서 발행하고 있는 학선(鶴仙)의 뜻에 작은 보탬이 될 까 하는 뜻에서 새해부터 양택에 관한 글을 싣기로 했다.

인생사는 작은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커지는 것이고 작은 불행부터 막아야 큰 행복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니.

만약 이 글을 보고 일상 생활에 불편한 것을 편리한 것으로 돌리고 불행을 행복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보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면 그 고마움은 필자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학선(鶴仙) 유래웅 선생에게 표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학선(鶴仙)이 아니면 이 글을 세상에 공표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독자들의 건승을 빈다.


애정운(愛情運)


남녀(男女)의 사랑은 인간 본성(本性)의 수요(需要)요 생활상 필수의 노정(路程)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과 애증의 표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떨어질 수 없는 본정(本情)의 발로(發露)이나 사실은 대부분의 식물들이 자신의 씨앗을 바람의 힘을 빌려 사방으로 펴져 나가게 하듯 인류 역시 자손 만대의 증식을 위한 본성이 애정으로 표현화되는 것인데 인간은 이를 애정이란 아름다운 문구로 미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시경(詩經) 첫장인 주남(周南) 관저(關雎)편에서도 사랑의 미구(美句)로 노래했고 시경 삼백편(詩經三百篇) 전체가 사랑의 찬가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주역(周易) 64괘 384효 전체를 사랑의 유희로만 해석해도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것은 인류는 그 자신이 존재하는 한 애정의 표현으로 인한 애증(愛憎)과 이합(離合)의 멍애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의 업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남녀의 혼인은 천지(天地)의 대의(大義)요 음양의 화합이며 결혼은 인륜의 시작과 끝이요 인생의 대사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남녀의 혼배(婚配)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모든 문화적 국경이 허물어져 사고가 혼잡 됨에 따라 결혼의 풍습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고 세태의 이변에 따라 모든 남녀는 극도의 이기심으로 치달은 나머지 사소한 일로 파경(破鏡)이라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또 여성들의 경제독립은 40살이라는 노처녀를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러 옛날 시대 같으면 그야말로 노령(老齡)의 할머니 연세라 속칭 왕신단지로 굳혀 버린 꼴이 된 셈이라 할 것이다.


한의학의 경전(經典)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보면 여자는 7세에 천계지(天癸至)하고 남자는 8세에 천계지(天癸至)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인간 생명의 원천(源泉)인 호르몬(hormone) 주기가 여자는 7세에 남자는 8세의 주기로 변화된다는 뜻이다. '남녀 7세 부동석' 이란 이로부터 유래 된 말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7세가 재지(再至)하는 14세부터 임신이 가능한 것이고 7세가 세 번 겹치는 21세 전후에, 남자는 8세가 세 번 겹치는 24세 전후에 결혼해야 인간의 가장 적절한 결혼 적령기란 뜻이다.

왜냐하면 3이란 만물의 완성수가 되기 때문에 천계지(天癸至)하는 7, 8세의 나이가 세 번 겹치면 소성(小成)이 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적으로도 여자는 21세 전후에 남자는 24세 전후에 가장 왕성한 성 호르몬이 분비되게 되는데 그 것은 바로 자손번식을 위한 자연의 생리현상인 것이다.

 

2, 8 청춘이란 일상용어는 여덟 살이 두 번째 닿는 즉 18세의 혈기 방강한 꽃다운 청춘이란 뜻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어쩐 영문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만혼이 제일이란 이상한 유행으로 치달아 외면적으로는 인생을 구가한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독에 찌들어 정신까지 이상해지는 남녀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다다르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모든 기현상은 성이물환(星移物換)하여 천지의 이치가 모두 변화한 탓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란 병이 있으면 약 또한 있게 마련이니 그렇게 고독에 지든 남녀의 병을 고칠 사랑의 묘약은 바로 풍수의 논리 밖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풍수의 논리상 궁극적으로 말하라면 조상의 묘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집터가 왕산왕향(旺山旺向-다음 고급 편을 참고 바람)이나 성문왕운(城門旺運)이나 칠성타겁(七星打劫)등에 해당된다면 절대로 시집, 장가를 못 가는 불운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전문적인 풍수 논리이므로 다음 장으로 미루고 우선 어떤 이유에서든지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처녀나 총각이 있다면 사랑의 쟁취도 성의와 노력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달아 간단한 풍수 논리라도 구를 기울여 매일 실천에 옮긴다면 행운의 여신이 분명히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본다.

 

미혼자들이 빠른 결혼을 원한다거나 부부간에 혹시 별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활풍수상의 한 방법인 도화운(桃花運)을 잡아야 한다.

 

도화운을 잡는 방법이란 도화위를 먼저 알아야 되는데 도화위란 다음 그림에서 보듯 집안에서 현관문이나 방문 밖으로 나갈 때 왼편은 여성의 도화위가 되고 오른편은 남성의 도화위가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문 밖으로 나갈 때 청룡방(靑龍方)에 해당되는 왼편은 여성의 도화위고 백호방(白虎方)에 해당되는 오른편은 남자의 도화위가 된다는 말이다.


독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도화위상에 설치할 꽃병은 담자(淡紫)색이나 분홍(粉紅)색 아니면 아름다운 색깔의 꽃병이라야 좋고 꽃 역시 아름답고 예쁜 꽃을 골라 꽂아야 되는데 장미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찔레과에 속해 가시가 있기 때문에 꽂아 놓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매번 꽃 화분을 갈아주기 귀찮으므로 조화(造花)를 설치해 놓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경험상 절대로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명심하고 반드시 생화분을 갖다 놓아야 한다.

 

그 다음 금붕어는 어항을 사서 한 마리만 길러야 한다. (다음 금붕어 양어조 참조)

그러면 좋은 연분을 신속하게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풍수상 이러한 방법을 하나의 방편이라 생각할 지는 몰라도 어찌됐던 이러한 방편으로 인해 남녀간에 좋은 연분이 닿는다면 국가나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의 대행(大幸)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