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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출장 수맥과터 진단전문/ 주택(APT.전원주택) 산소,사무실 감정 010 6277 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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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수맥풍수감정연구원 수맥과터 칼럼-나의 수맥이야기 (2)

by 宣人 2013. 10. 30.

선인수맥풍수감정연구원 수맥과터 칼럼

당시 몇번이고 현장을 통해 밝혀본 수맥과 실체를 더이상 의심할 필요도 없었으며 하루속이 내 조상님의 산소를 찾아가 묘지의 상태를 알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친이 갑작스럽게 중풍을 맞아

시력을 잃은 것과 부친이 방광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다니셨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을 만나 지금까지 보고다닌 수맥의 이야기와 현장사진 ,동영상을 보여주며 조상님 묘를

가보자 권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나와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인 전남화순군 도곡면 선산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어설픈 실력이였지만 할머니와 조부님의 산소가 수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하루빨리

이장을 하자며 권유를 하였다.

 

아버님은 묏일이 옛날 부터 어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많이 꺼리셨지만 항상 마음에 걸리셨던 것은

할머니의 묘가 홀로 떨어져 있었으며 내가 죽기전에 꼭 해야할 일이라며 생각을 좀 해보자 말씀 하셨다.

 

그날 이후  또 다시 묘지 감정을 하게 되었다.

뜨거운 초여름 조부모님과 증조모 산소가 수맥에 걸려 있으니 참고 하시고 좋은 곳으로 옮겨 주시는 것이 후손들에게도 좋다고 말씀하시며 산을 내려왔다.

 

그날부터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던차 어머니는 길일을 따져 하자고 하였지만 필자는

하루가 급하다는 무언의 언지를 받는 느낌이였다.

 

어머니와 날짜 문제로 티격태격하던차 밑에 남동생이 직장에서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 사고가 난것.

그 사고로 동생은 왼쪽 팔이 부러져 철심을 박는 신세가 되었으며 난 이것이 하루속히 이장을 원하시는

조상님들의 무언의 메세지라 생각했다.

 

결국 나의 성화와 타협으로 이장을 하기에 이른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머니 , 소변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산 중턱을 올라

수맥이 두개 걸려 계신다는 18년된 할머니의 묘를 파묘하게 되었다.

 

할머니와 나는 생전에 참으로 애뜻한 노스텔지어(향수)가 많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이

주마등 처럼 떠올랐다.

 

관뚜껑이 열리고 드러나 할머니의 시신은 18년 세월동안 썩지 않은 축축한 수의와 관밑에 흥건한 물과

검게 불에 태워진듯한 뼈 상태는 지금까지 체험한 남의 조상의 시신과 사뭇 다를 바가 없었다.

 

할머니의 체백을 모시고 ,할아버지의 관뚜껑을 여는 순간 유골을 휘감은 나무뿌리.그리고 가슴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다람쥐집. 목근의 피해가 엄청날 정도였다.

지금도 후회가 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 현장 사진을 왜 남겨두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증조모님의 파묘현장에서는 아버님도 기억하지 못하시는지 한 차례 이장을 하였던 흔적이 있었고

황토 흙이 물에 질퍽질퍽한 상태로 계셨던것.

 

더운 여름에 치루어진 이장은 참으로 힘들었다.

병환중인 노모를 모시고와 이장을 한 나와 이장을 마치고 지내는 봉분제 앞에서 부친은 눈물을  흘리

셨다.

자식이 하루빨리 해드려야 했을 일을 손자,증손자가 한것이 후회 스러웠으며 .이런 흉지에 수십년동안

모신 불효의 눈물을 흘리셨다.

 

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과 돌아온 그날밤 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할머니는 그날밤 꿈에 하얀 소복에 흰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안고 내 차에 타시더니

" 아가~ 터미널로 가자"

할머니 터미널은 왜요? 라고 되묻자.

이제는 내가 편한 곳으로 가니 그리 알아라  나 이제 간다" 라고 하시던 마지막 말씀을...

 

그 후로 할머니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후 풍을 맞아 사지는 멀쩡했지만 시력이 온전치 못했던 어머니는 반정도의 시력을 되찾았지만

병환이 깊었던 부친은 1년 후 별세 하셨다.

 

아버님은 별세를 하시기전 " 그래도 내가 죽기전에 너 때문에 자식된 도리는 하고 떠나게 되는구나" 라고 하시던 말씀 그리고 난 큰 아들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물구덩이에 들어가지는 않겠구나" 라며

웃음짓던 아버지의 말씀을...

 

그후  전국을 다니게 되었으며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묘를 감정하게 되었고 나만의 방식으로 수맥을 피해

이장을 하였고 그에따른 믿지 못할 신비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수맥과풍수 전문가라는 분들이 감정하여 수맥이 없다는 묘가 나에게는 수맥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이장하게 되었으며 그 속은 수맥이 없다고 한 그 사람이 사기꾼이거나 형편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고마움의 인사도 또 다른 수맥탐사가나 풍수가들로 부터

비난과 감언이설에 오르기도 했다.

 

전국에는 내노라 하는 수맥탐사가들과 풍수를 수십년 해온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스스로 터득한 경험과 체험에서 내가 느낀것은 수십년 공부도 최고라하는 이름있는 탐사가들의

주장도 반드시 유명세 만큼 정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였던것.

 

죽은자든 산자든 그 사람의 복과 업에 따라 사람을 만나게 되고 업장이 소멸되어야 팔자도 풀리는 것은

아무리 복을 주려고 하여도 받지 못하는 이가 있고 뜻하지 않게 받아들여 흉을 길(吉)로 전화위복 되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진실과 거짓이 음과양으로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갈것이고 나는 내 이득보다는 타인의 팔자를 조금이나마 조상의 음덕으로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을 헤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수맥탐사 방식대로 나는 수맥을 피해서 자고,  내 부친을 모셨으며 내 조상님도 그렇게

모셨다.

그 뒤에 남겨진 평온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저 전설의 이야기와 미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심리가  있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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