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수맥풍수감정연구원 수맥과터 칼럼
지난 2005년이 되어서야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광복을 얻기까지는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온 국토를 지키려는 열사의 정신이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강산이 6번 바뀌어 버린 지금에도 일재의 잔재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일부 친일파의 후손들은 친일했던 과거 조상들의 땅을 되찼겠다는 의지로 소송을 준비하거나 일부는 승소를 거둔 상태이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이 후손들은 1997년경 승소를 한바 있고 송병준의 후손들은 3천억대의 인천 부평의 땅을 얻기 위해 준비에 임하고 있으며 이근호의 후손인 이재극은 경기도 화성의 30억대의 땅 소송에 1차 승소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우리네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어떠한가?
단재 신채호 선생과 노은 김규식.여천 홍범도 ...등 외에 200~300명의 독립투사들은
대한민국의 국적도 없는 무국적,무호의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정을 꾸리기 힘들정도로 기초생활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흥사단 사무처장의 말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분들의 후손들은 3대가 망해갈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생을 보내고 있는 반면 친일의 후손들은 피로물들인 국토안에서 권리를 행사해 가며 떳떳하게 살고 있다.
언젠가 단채 (丹齋)신채호 선생의 며느리가 선생의 묘를 강제 이장하였던 기사가 난적 있다.
봉분이 허물어 지고 잔듸가 죽는 것을 보며 국가에 이장을 권유했지만 묵인되었던 것에 대해
법을 어겨가며 강제 이장을 추진하였던것.
그러나 필자는 효창공원내에 안치된 독립운동가와 동작동 국립묘지.망우리 시립묘지에 안치되어 있는 국가유공자의 묘들을 방문하여 보면서 묘지의 심각성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까?
60년전 국가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운동가들의 묘가 모두 수맥이 흐르는 흉지에 모두 계신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로인한 영향력이 후손들에게 전해 지고 있지는 안는 것일까?
시대적인 비극앞에서 한 세상을 힘들게 살다간 이들의 안식처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공동묘지 정책.
조상의 기운과 음덕을 끊기위한 명당말살론.등으로 흉한 기운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인가?
인걸(人傑)은 간데없고 3대를 넘어 4~5대가 넘어서도 기(氣)를 필 수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역을 탐사해 보면서 3대가 망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의 현실을 과거라는 시간에 만들어진 그 들의 조상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있었다.
선인수맥풍수감정연구원 전국출장 수맥과터 진단 010-6277-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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