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사천(泗川) 단본이다. 시조는 고려 때 낭장(郞將)을 지낸 목효기(睦孝基)이다. 오늘날에는 희성이 되었으나 고려 말 이후 특히 조선 중엽에는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충(忠) ·인길(仁吉) ·자안(子安) 등의 무신이 남해안과 동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격퇴하였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세칭(世秤)과 그 자손들이 목씨를 중흥시켰다. 그의 아들 첨(詹)은 선조 때 이조참판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첨의 아들 3형제가 문과에 급제, 현달하여 목씨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맏이인 서흠(敍欽)은 예조참판을 거쳐 효종 초에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고, 둘째 장흠(長欽)은 인조반정 후 호조참판 ·도승지를 지냈으며, 막내 대흠(大欽)은 예조참의를 거쳐 강원부사로 선정을 베풀었고 시문에도 뛰어났다. 또 숙종 때 남인의 중진으로서 많은 파란을 겪은 내선(來善), 부제학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갑술옥사로 삭주(朔州)에 귀양가서 죽은 창명(昌明) 등이 있다.
목씨는 갑술옥사를 고비로 남인의 몰락과 함께 세력을 잃었고, 호룡(虎龍)이 신임사화의 고변자가 됨으로써 명예가 다소 손상되었다. 이 밖에 두드러진 인물로는 순조 초에 대사간으로 있으면서 가톨릭교도를 탄압하고 판서를 지낸 만중(萬中)이 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4,167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씨 중 113위를 차지하였고, 85년도 조사에서는 1,721가구로 274성씨 중 114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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