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수맥풍수감정연구원 수맥과터 칼럼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도공(悼公)에게는 사마 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는 법을 엄히 적용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그런 그가 도공의 동생인 양간(楊刊)이 군법을 어기자 그의 마부를 대신 잡아다 목을 베어 죽인 적이 있었다.
양간이 형에게 호소하기를 "지금 사마 위강에게는 눈에 뵈는 것이 없나 봅니다. 감히 제 마부를 목을 베어 죽여 우리 왕실을 욕보였습니다." 도공은 자초지종을 듣지도 않고 사마 위강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이때 곁에 있던 양설이라는 신하가 위강을 변호하였다. "위강은 충신으로 그가 그런 일을 했다면 반드시 연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도공이 내막을 알게 되어 위강은 더욱 신임을 받게 되었다.
어느 해 정나라가 출병하여 송(宋)나라를 침략하자 송은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진의 도공은 즉시 노(魯)와 제(齊), 조(曹)나라 등 12개국에 사신을 보내 연합군을 편성하여 위강의 지휘로 도성을 에워싸고 항복을 요구하여 마침내 정나라는 연합국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되었다.
한편 초(楚)나라는 정나라가 북방과 화친을 맺자 이에 불만을 품고 정나라를 침공하였다. 초나라의 군대가 강성함을 안 정나라는 초나라와도 화의를 맺었다. 이러한 정의 태도에 화가 난 12개국이 정나라를 다시 쳤으나 이번에도 진의 주선으로 화의를 맺자 정나라는 도공에게 감사의 뜻으로 값진 보물과 궁녀를 선물로 보내왔고 도공은 이것을 다시 위강에게 하사하려고 했다.
사마 위강은 이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십시오(居安思危). 그러면 대비를 하게 되며(思則有備), 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有備則無患)." 도공은 이러한 사마위강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천하통일의 패업을 이루게 되었다.
유비무환(有 備 無 患)의 유래가 여기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과거에는 모르던 사실들.그러나 지구 생성부터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상들을 모른채 지내오게 되면서 받는 피해는 많다.
필자는 원시인들의 묘(지석묘)를 탐사해 보면서 아직은 확정짓지 못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파주시 탄현면과 연천 학곡리 의 지석묘들을 통해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수맥을 피해서 묘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에 반해 아랫 지방의 지석묘와 고인들은 규모가 크다보니 수맥에 걸려 있는 확률이 큰것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수맥을 피한 청동기 인들의 묘는 어떻게 해서 수맥을 피해서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 이였다.
우연일까? 아님 어떤 지구 유해파를 감지하고 느낄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이 진화론을 거듭한 인간들의 감각보다 더 뛰어난 것일까?
날짐승,들짐승.들 조차도 그들의 보금자리는 길(吉)한 곳에 둥지를 틀고 생활을 하는 반면 고등동물인 인간은 생의 많은 부분을 수면을 취하면서도 길하곳이기 보다는 건강을 빼앗기는 흉한곳(유해파-수맥)에 몸을 맞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것.
예로부터 조상들은 따뜻한 구들장 아래에 몸을 맞겨놓고 삼초의 온도를 유지하여 왔다. 그것은 원활한 혈행의 흐름을 유지시키기 위함이였으며 쾌적한 수면을 보장받기 위한 방식이였으리라.
그러나 수맥의 유해는 이러한 원적외선의 무해함 과는 무관하게 세포의 변이와 뇌파의 끊임없는 교란을 통해 불면과 다몽을 일으키거나 피로에 따른 병적인 증상을 더 크게 악화 시키고 있었다는것.
그래서 어찌보면 장수의 비결이 선천의 정기로 부터 얻는 것이였으나 ,후천의 기운을 상실함으로써 얻는 차이도 분명했으리라 여긴다.
냉지는 인체에 습을 불러 오고 습은 담을 만들고 담은 열을 생성하고 그로인해 만성적인 질병이 생긴다.
그래서 생이 아닌 사후의 자리(묘터)도 가급적이면 음지보다는 양지를 구하고 조성하려 했음이나 이것이 풍수학적인 안목으로만 겉을 보았을뿐 내적인 영혼의 안목은 무시한 채 자리를 정하다 보니 관속에 물이 가득 채워진채로 조상의 체백이 둥둥 떠 있는 경우를 보거나 ,나무뿌리가 휘감고 있는 목렴의 상태나.쥐나뱀,벌래등이 같이 거주하게 되는 충렴의 상태로 수십년에서 수백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세종대왕능은 끊임없는 후손들의 단명과 우환의 속뜻을 파묘를 통해 일 부분 밝혀 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석관안에 물이 가득채워진채 있었던것
그런 연유로 그후 지금의 영릉(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으로 새롭게 이장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오랜 왕릉과 유적지를 답사해 보면서 얻게 되는 풍수적인 명당의 길지를 떠나 그 내부의 길과흉을 밝혀본 내용과 사진을 게시판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또한 이장현장을 통해 수맥의 위험성과 우환.또는 신비한 사례들을 수 차례 접해보면서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을 잘못 오인하여 나쁘게만 생각하다 보니 두려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맥은 자연이 준 그대로를 취하고 또는 피해감으로써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집은 건축시 수맥의 흐름을 정확히 찾아서 신축하고 ,묘는 장례시 수맥을 피한 냉지를 멀리 하는 것이다.
후손은 조상의 음덕을 받기보다는 베풀며 섬기고.조상은 겉양지가 아닌 속양지를 얻음으로 무사안일의
영적인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수맥의 피해를 예방하고 덧붙여 건수의 피해를 모면하는 비와눈을 감안한 광중의 적절한 깊이.그리고 그에따른 충(蟲)과 목근(木根)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광중조성을 통한 유비무환법 만이 집과 묘지를 통해 타의적으로 얻는 피해는 모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선인수맥풍수감정연구원 010-6277-1193 (전국출장 수맥과터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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