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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수맥감정연구회 풍수정보-풍수의 의미

by 宣人 2012. 1. 31.

선인수맥감정연구회 풍수정보

풍수의 의미

 

풍수는 바람과 물을 생활속에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고 응용하여 생활하는 방법을 정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원리에 따라 사람의 삶과 죽음에 적용하여 음택(陰宅. 죽은 사람이 묻히는 곳)이론과 양택(陽宅)이론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과 죽음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최근에는 이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여 건축이나 인테리어, 기타 생활과 주거에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풍수지리를 단순히 발복을 위한 묘지(명당)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가장 쾌적하고 좋은 주거 환경이나 생활문화를 가꾸기 위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될때 풍수의진정한의미가 있지않을까한다.

 

풍수의 기원

 

사람이 살기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고 깨끗하고 맛있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야 한다.

따라서 먼 옛날부터 주거지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바람과 물의 여건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지세를 관찰하는 작업이 곧 풍수를 보는 일로 인식되었고 풍수라는 말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풍수(風水)라는 말은 중국의 곽박(郭璞. 276-324)이 쓴 『장경(葬經)』에 '장풍득수(葬風得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의 약자로 풍수라는 용어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장풍득수 이론에는 풍수지리의 전체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장풍득수라는 말은 풍수지리가

이론적으로 상당히 발달된 시점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풍수지리는『주역』의 이론과

음양오행설이 결합하면서 더욱 완벽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

풍수학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발생했다. 그 오묘한 이치는 동양 철학에 기인한 것이며,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진리이기 때문에 역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는 풍수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진나라 시대 대역학자인 주선도(朱仙桃)라는 분이 수산기(水山記)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에서 명당자리 보는 비법을 밝혔다. 당시 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신빙성이 없다고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이구동성으로 그를 미친 사람으로 따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수산기가 신통하게도 잘 맞아들어가자 시황제는 수산기를 일반에게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왜나하면 수산기를 인용하여 왕이 나올 만한 명당자리에 일반이 묘를 써 버리면 왕통이 무너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예 수산기의 저자 주선도에게 죄를 씌워 죽여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후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시대에 와서 장자방이란 학자가 총오경과청낭정경을 저술했는데 역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으며, 또한 당나라에 와서도 최성왕이 금낭경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을 황실에서만 대대로 응용했었다고 한다. 비단 주머니에 금낭경을 넣어두고 역대 황제가 대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짖 않았다. 그런데 당나라 황제가 만약 민간 중에서 왕이 태어난다면 구족을 멸하리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 오히려 일반의 호기심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결국 당나라 말기부터는 도학자들이 목숨을 내놓고 금낭경을 연구하고 또 자기 나름대로의 풍수학을 정리하여 전파하게 되니, 그때부터 일반 대중도 널리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삼국 시대에 럭리학이 널리 전파되었다 하며, 이때부터 풍수학자들이 많이 생겨나 궁궐터 성곽,혹은 가옥 묘지에 대한 비결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풍수학설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자 일본에서도 그 지상(地相)의 비결을 신통히 여기게 되었으며, 이 땅을 강점했을 때는 13명의 역리학자를 차출하여 소위 13인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땅의 명당자리의 혈맥을 끊어버렸는데, 예를 들어 명산이라면 그 명산 허리를 끊어 신작로를 낸다든가, 너무 험준하여 지맥이나 산맥을 끊을수 없으면 철봉을 수없이 박아 산의 혈맥을 끊는 등 잔인 포학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풍수지리의 원리

 

풍수지리는 음양오행과 주역을 기초로 통계에 의해 정리된 학문이다.

오랜 세월 사람의 경험에 의해서 산과 물, 방위 등 자연은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 왔는데 그 이치를 정리한 것이 풍수지리이며, 이러한 학문을 경험과학이라고도 하고 통계학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의 원리는 산과 물이 기본인데 산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停止)한 것이므로 음(陰)이라고 하고, 물은 흐르는 것으로 움직여 동(動)하므로 양(陽)이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만물은 음과 양의 조화로서 이루어진다. 사람의 경우에도 음인 여자와 양인 남자가 서로 교배해야 만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풍수지리 역시 음인 산과 양인 물이 서로 어울려 배합되는 곳에서 자식 같은 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풍수지리의 간단한 원리이다.

 

 우리나라 풍수의 역사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는 신라 말기 도선에 의해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미 단군시대부터 사용되어 삼국시대에는 민간인들까지 풍수를 이용하여 이후 우리민족 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 특히 산이 대부분인 지형으로 인해 산에 대한 체험과 이용을 기반으로 산신숭배사상과

함께 자연스럽게 풍수지리를 이용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옛 고대의 고인돌을 살펴보면 대부분 산의 정상으로부터 평지로 연결되는

능선 위에 위치해 있고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고인돌의 입지기준은 후대에 전해져 삼국시대의 왕릉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미 풍수지리를 이용했음을 보여 준다.

또 단군이 처음 신시를 건설하게 된 과정의 기록을 보면 '환웅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땅으로 내려갈 즈음, 하늘로부터 지세를 살펴보고 삼신산인 한밝산이 가히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장소라고 판단되어, 천부인 3개와......'라는 기록이 있어 그 당시 이미 풍수지리가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 시대의 벽화에도 단군 시대의 사상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의 석탈해에 대한 기록 등에서 이미 삼국시대에는 일반인들 사이에 풍수지리가 널리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지리의 발상지는 지리적 조건이나 단군 시대의 환역, 그리고 오행설의 시초 등을 고려하여 살펴볼 때 중국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명당이란??

명당은 과연 있을까?

풍수설의 근본은 음양오행 사상에 어버이의 유해를 평안히 모시려는 효도의 사상이 합쳐서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하게도 우리 나라에선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한 방편으로 탈바꿈되어 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참으로 조상을 위한 마음에서 죽은 이의 영생댁(永生宅)이 되는 묘소를 풍광좋고 풍치 좋으며 조용하고 양지바른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효심으로, 또한 그만한 자리, 즉 풍광 좋고 풍치 좋으며 조용하고 양지바른 곳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명당이 아닌가 싶다.물론 역리학(易理學)이나 지상을 떠난 막연한 이치요 순수한 효심의 발로지만, 그러나 어떤 학술적인 이론도 그 근본은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명당자리는 타산적이 아닌, 참으로 조상을 위한 효양의 마음자세에서 찾고 또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추호라도 타산과 이기심을 앞세워 조상을 명당자리에 모심으로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는, 다시 말해서 조상의 "뼈를 팔아 먹겠다"는 모순된 자세는 고쳐야 한다.

그리고 순후한 효심에서 명당자리를 찾으면 하늘도 그 효심에 감동하여 계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명당자리를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명당자리는 왜 음덕(陰德)이 있을까?

 

여기서 음덕이라 함은 땅의 덕을 말한다.

사함이 땅의 덕을 본다? 사실 그렇다. 사람은 조상한테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날때 자연 지기(地氣)도 유전받게 마련이라 한다.. 이 지기의 유전이 바로 사람 몸을 형성한 뼈인데 뼈는 바로 지기와 통하여 이 뼈가 명당자리, 즉 산기가 뭉쳐있는 곳에 묻히면 저절로 후손들이 부귀와 영화의 음덕을 보게 되는 것으로, 이 지기의 이기(理氣)가 결국은 뼈와 혼합되어 유전의 법칙을 이루므로 산기가 뭉쳐 있는 자리는 반드시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로 산기의 뭉침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명당자리란 그 재혈만 찾으면 자손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당자리라고 하더라도 청룡이 없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면 자손이 없어 가운이 끊기는 법이다. 백호가 없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면 재물이 없어 가운이 가난을 면치 못한다. 또 앞에 주작의 부분을 둘러 막는 물줄기가 없으면 재물과 자손이 없는 법이라 좋지않다.

주작의 앞에 있는 불이 세차게 흐르지 않고 잔잔하며, 유유히 흐르고 물소리가 종용하면 자손이 관운을 받아 영화를 얻으며, 가운이 대대로 평온하고 화목하는 법이다. 이와 반대로 물소리가 슬프고 세차게 들리거나 물살이 빠르면 집안에 우환이 그치지 않아 멸망할 기운이 있어 결국 그 가문은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명당자리의 풀이비결

 

인걸은 지령(人傑地靈)이란 말이 있다. 잘난 사람도 나오고 못난 사람도 나오는 것은 모두가 산천의 수려한 기상과 둔탁한 기상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이다.

산이 높고 물이 깊고 들이 넓으면 너그럽고 도량이 넓고 큰사람이 나오며, 산과 물이 좁아 협작하면 소견이 좁으며, 산이 험악하고 물이 탁하면 험하고 표독한 사람이 나오며, 산이 높고 물이 맑으면 그 동네가 윤택하여 부자가 많으며, 산천이 맑고 수려하면 얼굴조차 아름다운 법이다.

천을태을(天乙太乙)의 뾰족한 산이 구름 밖에 솟구쳐 있으면 벼슬이 법관에 오르고, 물러가는 문구멍을 짐승과 새 무습을 한 형국에 산과 바위가 감아 주면 한림학사가 나오는 법이요, 산 형국이 왼편에는 깃발이 날리는 듯하고 오른편에는 북이 울리듯 솟아 있으면 대장, 장신이 나올 자리요, 산세가 뒤에는 병풍을 친 듯하고 앞에는 장을 두어 막아주면 재상과 문신이 나올 땅이다.

작은 산이 위에는 뾰족하며 아래가 둥그스름한 형상을 은병(銀甁)이라 한다. 이쯤 되면 석숭(石崇)같은 부자가 생겨나고, 산이 구부러져서 높고 낮음 없이 껴안은 것을 옥막형(玉幕形)이라 하는바 배도(裵度)같이 귀하게 되는 명재상이 나올 땅이다.

상형세가 초승달처럼 가느다랗게 미인의 눈썹인 듯한 모양은 아미산(蛾眉山)이라 이르는데, 산형세가 이쯤 되면 딸이 귀하게 되어 왕후 아니면 귀비가 나올 땅이요, 천마의 형국이 남방에 위치하여 머리가 번쩍 들리고 몸통은 약간 낮아 평평히 나아가다가 꼬리가 되어 톡 떨어지면 반드시 왕후가 나올 자리이다. 또 앞뒤 좌우로 기운차게 내려오면서 크고 작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천 봉우리 만 봉우리 호위한 것은 천궁녀의 기상이요, 앞뒤로 벌어진 낮은 산봉우리가 팔백형화(八百炯火)가 떠오르는 듯한 자리는 모두 극위 극존한 제왕이 나타날 자리이다.

여러 산이 그치는 데 진혈(眞穴)이 있고 여러 산이 모이는데 명당이 있는 것이다. 산체가 모두 등을 져 달아나면 인가파산이 되는 법이요, 한물이 기울어 흘러빠지면 관에서 물러서고 실직하게 되며, 산 형상이 어지러운 치맛자락 같으면 여자가 음분(淫奔)하고 물이 당국 안으로 꿰뚫어 나가면 자손이 절손되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물의 조화 또한 중요하다.

 

 묘지의 풍치림(風致林)

 

명당자리를 골라 묘를 썼으면 풍치를 돋울 나무를 묘지 주변에 심어야 한다. 묘지는 집과 연결된 곳이다. 산 사람의 집과 같아서 집을 풍치있게 꾸미려면 정원을 마련하여 가꾸듯 죽은 사람의 집(묘짐)도 풍치있게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듯 묘지 주위에도 꽃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묘지로부터 10미터 밖에 심는다.

집에서도 나무 뿌리가 구들장 밑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와 같이 묘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무 뿌리가 묘지로 파고들면 좋지 않다고 한다. 또한 10미터 밖에 심더리도 뿌리가 길게 뻗지 않는 종류로 사철 나무나 상록수가 좋을듯하다.

물론 아카시아 따위의 나무는 뿌리가 길게 뻗기 때문에 묘지 주위에서 뽑아 버려야한다. 뿌리가 길게 뻗지 않는 꽃나무는 어떤 종류든 심어 놓으면 죽은 이를 오래도록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다.

 

 화장의 풍수지리적 의미

 

명당에 대한 소망과 뿌리 깊은 매장 문화로 전국토가 묘지화되어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묘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어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는 매장(묘지)에 대한 각종 억제책과 함께 화장을 적극 장려하고 각종 지원책도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들의 화장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면서 화장률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면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볼 때 화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결론은 한마디로'무해무익(無害無益) 하다' 고 한다. 즉 아무런 해도 없고 또한 이득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매장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명당이라고 하는 묘지 중 실제 명당은 매우 적고 이로움과 해로움이 비슷한 경우가 일부이며 오히려 해로움이 더한 묘지가 상당수라는 게 통설이다.

더구나 명당이라 해도 관리가 부실하여 유실, 파손이 되거나, 혹은 주변의 개발로 지형이 바뀌게 되면 역으로 해가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결국 명당보다는 해로움이 많은 곳에 묘를 쓸 확률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대부분 천하명당은 아니더라도 좋은 자리를 살펴 묘를 쓰겠지만, 과연 화장보다 더 이로운 결과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가 될지 의문이다.

 

좋은 토질이란?

 

토질에서 오색이 영롱해야 한다 관 넣을 자리를 팔때 흑 빛이 黃,黑,白,赤,靑이 고루 섞인 흙에서 서기가 비쳐 나올 듯이 윤택해야 한다.

습기가 많지 않아야 한다. 습기가 많으면 관운이 없다 물론 가믐에 타격을 주는 흉액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흙이 굳어야 한다. 푸석푸석하면 자손이 번성하지 못하고 또 크게 출세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큰 문제가 생길 그런 액운이 있는것은 아니라고 한다.

관을 넣을 자리에 물줄기가 있으면 집안에 액운이 그치지 않는다. 그물줄기를 둘려야 한다.

관을 넣을 곳에 돌반석이 있으면 자손이 끊긴다. 그 돌반석에 관을 얹어 놓을 때는 흙이 중간에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명당자리의 토질(土質)

 

산세가 한데 모이고 앞에 물을 만나 지기(地氣)를 멈추게 하는 것이 명당자리라 했다. 꼭사람이 누울수 있을 만한 너비에 봉분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런 곳이 명당자리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도 명당자리가 되려면 토질을 갖추어야 한다. 바윗덩어리에도 사람이 누울수 있을 만큼 흙이 있어 그 흙만 긁어내면 바로 관이 누울수 있다면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다.

 

 

선인수맥감정연구회 010-6277-1193 수맥탐사의뢰